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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박물관을 지나가다
  작 가 권영준 저
  출 판 사 한국문연
  I S B N 5000056970
  읽 은 수 485
  등 록 일 2006-12-19 오후 4:02:00

저자 소개

·1962년 경북 풍기
·1993년 <현대시>
·현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교사

 

 

 

책정보

혜화동에서 길을 잃다 1

 

이 길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리다
한 소녀가 낙태한 미숙아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청소부는 익숙한 손길로 토막난 시체를
폐기물봉투에 쓸어 담는,
누군가 청색 신호등에
퉤! 침을 뱉고 지나가는,
내가 서 있는 경악스런 이 곳은 어디인가
국적불명의 특산품인 재즈와 블랙커피를
빈 가방 속에 조금씩 담아와서
바통을 은밀하게 주고받는 사람들…
그 폐허에 익숙하지 않는 자는
초라하게 길을 잃고 헤매다 피맛골로 추방당한다
역한 인스턴트 교성이 구토하듯 쏟아지는 거리에서
해골가면 속에 온몸을 감춘 사내아이들이
예리한 잭크나이프를 꺼내
이상한 시대들을 난도질하며 지나가고,
폭주족과 뒤섞여 속도를 만끽하는 경찰차에
사람들은 신속히 태워져 정신병원으로 호송된다
완강한 폐허의 힘으로
파란 눈의 의사는 중절수술하듯
기억세포를 제거해 버린다
절규하는 가로수에 만국기처럼 걸려 있는 모국어,
셔터 내린 정거장 찻집,
나는 적신호 켜진 사막도시의 횡단보도를
두 눈 크게 뜨고 더듬더듬 건너간다
장님처럼.

 

 

시인의 말

정말일까/수백년간 지상의 정신을 떠받히던/시의 현란한 수사가 신비를 잃었다는 말이./나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이 도시의 한복판에서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른/거대한 독버섯들이 본다/그리고 나는 날마다 조금씩 작아져 있다/내가 만드는 이 자괴는, /너무 작아져 울림을 만들지 못하는 나의 노래는,/시일까 반시일까 비시일까/그건 무엇이라도 좋다, 문제는/나의 치유되지 않는 이 불치병이,/시의 힘을, 너무 맹신하고 있다는 데 있다

 

누가 뭐라해도 세상 끝까지 내 노래를 들어줄/나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과 S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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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준의 작품들은 나를 대상화하여 깊이있게 탐구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자의식은 무엇인가 이런 물음들이 주로 그의 상상력을 작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김수영 역시 자신을 대상화한 반성을 일관되게 글감으로 삼았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생각하는 담론들을 하나의 본보기 처럼 보여주었던 것이다. 특히, 60년대 무렵에 씌여진 그의 시들은 반성행위를 주된 진술 형식으로 힘있게 밀고나간것들이었다. 마찬가지로 권영준의 시 또한 자신의 반성행위를 시발로 하여 일련의 담론들을 펼쳐보여준다._(홍신선. 시인, 동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