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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아름다움 찾기
  작 가 김백겸 저
  출 판 사 한국문연
  I S B N
  읽 은 수 466
  등 록 일 2006-12-19 오전 11:50:36

저자 소개

·1953 대전광역시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집 《비를 주제로 한 서정별곡》, 《가슴에 앉힌 山 하나》

책정보

시간 속을 걸어가는 후박나무

 

 

일찌기 할아버지가 심으셨다는 우리집 후박나무는
대문 밖을 성큼 뛰어넘어 햇빛 속 큰길을 걸어가는 것이
소망입니다

소망이 남기고간 발자국을 따라 어둠의 빗장을 열면
바람은 화사한 옷 입은 처녀적 할머님 모습으로
문간에 서성거리고
가슴 두근거리는 적막이 키 자란 그림자를 늘이며
골목 어귀를 돌아옵니다

그 두근거림은 할아버지가 독립의 꿈을 안고 방랑하던
일제시대의 불안이기도하고
가지않는 한 세상을 바라보며 물레를 돌리는 할머님 손에
매듭으로 맺힌 그리움이기도 합니다

그리움이 잎을 피우고 가지를 쳐서
오늘은 그림자를 무성하게 이루고 있는 후박나무 아래
나는 생각을 잡는 술래가 되어 누워있지만

백리를 한치도 움직이지 않고 늙어온 우리집 식구
할아버지가 걸어간 옛길을 따라 자신의 발자국을 남겨보는 일이
꿈일 것만 같습니다

햇빛은 넓은 잎 사이로 파고들어
눈부신 꽃잎으로 피어 있읍니다
뭉게구름은 앞산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하늘에 기쁨을 그리고 있읍니다
후박나무가 깊은 침묵을 장막으로 내리고 있는 초여름 오후
나는 출구를 찾아 생각의 지도를 그리고 또 그립니다

저녁이 소문도 없이 우리집 초인종을 누르고서야
나는 비로소 수수께끼의 문고리를 찾아냅니다
후박나무는 시간 속의 큰길을 걸어왔음을
문밖에는 할아버지 발자국과 함께
후박나무 발자국이 나란히 패여 있읍니다
아직도 역사 속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키 큰 뒷모습을
내가 가만히 배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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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겸 시인은 이상주의자다. 그의 풍부한 정신생활은 도시 샐러리맨으로서의 책무나 의무라는 현실에 부딪쳐서 종종 방해를 받곤 한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김백겸 시인의 정신 우월주의 내지 이상주의는 일상의 고통에서 그의 정신을 버티어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제도며 법률같은 인간이 만들어낸 장치뿐만이 아니라 신이 준 한시적 목숨같은 운명과 삶이 주는 여러 크고 작은 고통들까지도 그의 꿈을 망그러뜨리지는 못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게 보면 꿈과 현실의 갭이 크다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선천적으로 꿈이 많은 기질이라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꿈이 있는 한 희망이 있는 것이고 희망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운명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리고 인생은 희망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인간을 더 많이 실패시킬 수 있을 것이지만─ 그는 바라는 것이 더 많으므로 좌절도 더 많다-, 결국 허용된 시간 속에서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이 더 충만한 삶을 살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