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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성난꽃에서 명왕성까지
  작 가 유성식 저
  출 판 사 한국문연
  I S B N
  읽 은 수 709
  등 록 일 2006-10-13 오전 10:00:56

저자 소개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성난 꽃>(고려원)이 있다.

책정보

성난꽃으로부터 빅 뱅으로

1.
머리뼈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두 귀로 분명히 들린다. 여기는, 어디인가, 꼬리를 흔드는 맹수들이 털 뽑히고 이빨 꺾이고 가마솥에 유황불이 활활 지펴지는 곳,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 동물들은 무기력한 대오를 지어 도시로부터 기어나온다. 한때는 사냥감의 등뼈를 쉽사리 부쉈던 그 허연 이빨이 이제 헛것만 물어뜯다 목이 타면 불모래 한움큼 삼키고, 그때마다 가늘게 박동하는 꿈의 육체를 누군가 젓가락으로 뒤적이며 쩝쩝쩝 입맛 다시는 소리, 아직 안 익었어. 마지막 숨소리를 더 비틀어 짜내면 그제서야 펄펄 끓는 피 한 방울이 나올까, 고통보다 차라리 수치가, 개들은 점점 더 두려워지는 것이다. 껍질을 벗기운 알몸의 맹수들이 토막토막 고기가 되어 이글이글 불 지피는 한여름으로, 들어간다.

2.
저 미인들에게서 노린내가 난다
TV에서도 노린내
걸어다니는 저 꽃들에서도
아이들에서도
풍선에서도 노린내
내 이빨이 혀를 깨물고 손톱이 살을 후벼 파
냄새를 맡으면
거기서도 노린내
온 세상에서 노린내가 난다

3.
나는 성난꽃을 폭파시킬 꿈을 꾼다.

그놈들은 지구의 복잡한 먹이사슬의 끝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수백개의 모니터를 설치하고 정교한 회로를 개발했다. 이제 24시간 컴퓨터를 켜 놓고 있다가 어느날 엔터키 하나만 누르면 이 지구상의 성난꽃들을 모두 폭파시켜 버릴 꿈을 꾼다.

성난꽃도 나를 알고 있다. 라디오 전파를 타고 내 방에 왔다 가거나 불꺼진 TV를 통해 엿보고 있다. 성난꽃도 꿈을 꾼다. 내 꿈의 회로를 타고 들어와 나의 폭파기계를 폭파 시켜버릴 꿈을 꾼다. 이상하다. 성난꽃과 내가 서로를 폭파시켜 버릴 꿈을 꾼다. 성난 나와 성난꽃이 서로 폭파될 꿈을 꾼다. 어떤 때는 성난꽃과 함께 식탁에 앉아 성난 밥을 나눠 먹는다.
함께 잠 못 들고 함께 침대에 눕기도 한다.

이상하다.
나는 성난꽃과 함께 폭발한다.




시인의 말
나를 사랑했던 아름다운 사람을 생각하며 시를 쓴다. 그 사람이 영원히 아름답고 행복하기를 바라며 시를 쓴다. 내가 사랑했던 아름다운 사람을 생각하며 시를 쓴다. 내가 그 사람을 영원히 찬미하기를 바라며 시를 쓴다.
재앙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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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모든 생명체가 꿈꾸는 환희의 빛터이다. 그래서 꽃의 개화는 악마적인 어둠에 대한 순결한 빛의 승리로 비유된다. 아무리 음습하고 낮선 골짜기라고 할지라도 꽃이 밝고 환한 빛을 뿜어내고 있으면, 그곳은 이내 정겨운 축복의 땅으로 여겨진다. 꽃은 어디에서도 평온한 사랑과 환희의 등불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성식의 시세계에서 꽃은 더 이상 아름다움의 정화이며 정점으로서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유성식의 시에서 꽃은 두렵고 불길한 위악적인 분노와 죽음의 표정을 하고 있다. 그는 찬연한 아름다움의 상징으로서의 꽃의 이미지는 지난 시대의 고전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황폐한 도시 문명 속에 이제 더 이상 미래의 꿈과 찬연한 아름다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섬뜩한 어조로 묘파하고 있다._홍용희(문학평론가)